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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가

"나같아도 이거 보고 좋아요 안누르겠는데"라고 할 뻔

대행사에 다니던 시절, 인스타그램을 부스팅하는 다양한 캠페인을 정말 많이 해봤다고 자부했다. 누군가가 작성한 컨텐츠를 이 타겟, 저 타겟 돌려가며 어떻게든 하나의 숫자라도 모아보겠다고 했던 날들. 그냥 퍼포먼스 캠페인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성공적으로 자랑할만한 게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님. 수많은 SNS 광고를 집행하면서 깨달았던 건 좋아요는 생각보다 싸게 모을 수 있고 팔로워는 죽어도 모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딜 가나, 어느 팀이나, 같은 팀의 사람들과도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몇천만원을 (내 기준) 공중분해(..) 시켰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내가 공중분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 SNS의 의미가 거창하기 때문이다. 브랜드 SNS는 우리가 우리의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정말 몇 안되는 창구다. 주로 소비자가 걱정하는 지점, 불편해하는 지점들을 (FOMO라고 하는-) 이야기하는 수많은 광고에서 그나마 맘편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컨텐츠를 본 사람이 공감했을 때 다양한 행동을 하니 그들이 진정 우리의 팔로워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다만 적어도 내가 대행했던 많은 브랜드에게 SNS는 화면 너머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체리피커든 뭐든 좋아요 하나를 싸게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왜 그러나면, 결국 담당자는 그 SNS의 성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지표가 숫자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난 참 그런 맥락 안에서는 숫자를 잘 만들어내는 편이였다. 노력..과.. 고민을.. 갈아넣어서. 다만 그게 정말 유의미했는가에 대한 현타는 늘 있었고.) 심지어, 1일 1포스팅이 국룰이라고 외치는 인스타그램 안에서 포스팅 주기는 많아야 주 2회. 수많은 컨펌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1회이거나 격주로 넘어가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사실 있는 환경 안에서도 잘해내면 좋겠지만 그간 내가 광고로 집행한 컨텐츠들은 그저 브랜드 화보컷, 간혹 가다는 소비자 리뷰들, 브랜드 소식들- 그러니까 어쩌면 딱히 소비자가 관심없을법한. 보고 흘려보내지 않은 게 신기하다 싶은 컨텐츠들이였다. 나는 브랜드SNS에 굳이 찾아오고, 팔로우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의미를 제공해야한다고 늘 생각했고, 광고집행을 하면서도 "나같아도 이거 보고 좋아요 안누르겠는데" 했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진짜 브랜드 인스타그램다운 운영을 해보기 시작했다. 컨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작성하고, 올리고, 어떤 순서로 올려야 재밌을지 고민하고. 내가 노력하면 올리는 빈도도 높일 수 있으니 글감이 떠오르면 앞뒤 안가리고 4-500자의 글부터 써제꼈다. 그리고 귀한 같은 팀 디자이너의 협업덕분에 '못해도' 이틀에 한 건 비율로 업로드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주정도. 그제부터는 컨텐츠 하나 당 하루 2천원이라는 비용으로 광고를 태워보기 시작했다. 나 진짜 SNS 부스팅캠페인 일예산 몇십만원 몇백만원도 써봤는데. 일예산 최저비용을(..) 설정하면서 얼마나 현타가 왔는지. 하루 2천원으로 대체 뭘 할 수 있지? 이게 되나? 심지어 온고잉도 아니고 일주일 기간설정(..)을 하면서 오 좀 울고싶은데. 컨텐츠 하나에 만오천원어치 태워서 뭘 할 수 있지? 라고 했는데-

 

 

이왜진. 이게 되네. 진짜 되네. 뭐지?

 

계정 로그인이 되어있으니 어떤 컨텐츠가 어떻게 반응이 오는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추측이지만) 다른 퍼포먼스캠페인을 집행하는 소재에서 유입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다만, SNS 컨텐츠에서도 팔로워가 늘고 있다. 팔로우하는 계정을 하나하나 뒤져보면 부계정이 하나도 없다. 진짜! 진짜 사람이다! 우와. 저 너머에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보고 팔로우를 눌렀다고? 도움이 되어보였든, 뭐가 되어보였든, 잘못 눌렀든 상관없다. 진짜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3주간 올린 총 1N개의 컨텐츠를 일괄 돌렸더니 어제 오늘 3만원을 썼는데, 팔로우도 3-40명이 늘었다. 진짜로. 이게 되네. 뭐지? 와. CPA면 1천원대긴 한데, 이게 얼마나 유의미한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저 너머에 사람이 있다.

 

컨텐츠를 머리써서 기획하고 계획하고 제작해낼 시간이 없어서 그때그때 대표님이랑 이야기한 거, 제품에 대해 들은 거, 내가 따로 공부한거, 살다가 혼자 궁금해지는거- 그냥 생각나면 무지성으로 글을 썼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은 하나였다. 그래도 어디 가서 오, 좀 도움되네-싶은 이야기를 하고 브랜드가 가진 전문성을 해치지 않아야한다는 거. 컨텐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거였다. (돈을 안쓰니까) 내부에 뭘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가 시간내서 하는거니까. 사실 우리 내부는 내가 인스타그램에 뭘 하든 신경 안쓸 것 같은데.... 그래도 하나씩 업로드되는 걸 보시면서 칭찬해주시긴 하더라(?)

 

아니 근데 이게 되네. 진짜 머리 터지게 글쓰고 혼자 하는게 엄청 억울했는데 오늘 출근길 내내 웃었다. 미친 9호선 급행에 낑겨서도 왕왕 올라오는 숫자들을 보면서 저 너머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졌다. 컨텐츠 마케터는 이 맛에 이 일을 하는건가? 다음 달에는 또 뭐 하지, 점점 일이 많아져서 리소스를 이렇게까지 쓸 수가 없는데- 하면서도 싱글벙글 즐겁다. 되긴 되네. 누군가 읽고 있다!

 

이 몇 안되는 숫자가 만들어낸 효능감은 오늘의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게 한다. 이 일을 이래서 포기할 수가 없다. 더 열심히 해야지. 더 잘 하고 싶다! SNS에서 시작된 효능감이 수많은 일의 바운더리로 뻗어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볼게요. 화이팅 김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