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난생처음, 무언가를 보내는 연말을-

오르 Orr 2023. 12. 19. 17:08

 

 

오랜만에 글에 정제없는 감동을 넣어볼까요. 예전에는 이런 글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과 표현을 정리하지 않고 나열하는 것들이 내가 가진 마음들을 실체화해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문장이 길어지고 비문이 많아지지만 내가 하는 말이라 애정이 갔었어요. 일을 하다보면 정제된 문장을 또 정제하고, 정제하고, 정리하고- 읽는 사람을 고민해서 쓰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제는 그런 의도로 쓰는 글들이 더 익숙해서 마음을 담으려고 하는 것 조차도 사실은 적응이 잘 안되네요.

 

연말입니다. 제게 올 연말은 연말을 연말답게 맞이한 첫 해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작년 연말엔 마치 슬레이트를 치듯 한 해가 지나면 덜 힘들까라고 생각했고, 그 전해에는 이 해가 지나면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늘 올 해를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불가항력이 작용해 나의 힘듦을 차단해줄 거라고 생각했고, 새해가 밝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에 또 한번 슬퍼지곤 했습니다.

 

어쩌면 그 많은 해 중에 올해는 가장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1월부텨 12월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볼 수록 어떻게 지나왔나 싶습니다. 이 해가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바라왔던 그 수많은 해들 중 올해가 가장, 객관적 지표로 생각해도 사실은 버거웠습니다. 불행이라 여겨지는 것들 중에는 행복이 꽤 많은 것을 차지하고, 부족한 눈으로는 항상 그 행복을 지나쳐야만 알아챘다는 게 아쉬웠지만요. 올해는 버거웠습니다. 행복을 행복으로 맞이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더 큰 문제들이 쏟아지면서 한 해를 휩쓸리듯 보냈습니다.

 

스스로를 응원하거나 위로하는 성격은 아닙니다만 올해는 살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습니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아무튼 지나가고 있어, 언제든 끝날거야, 뭐 이런 말들을 숨보다 더 많이 내뱉었어요. 스스로의 불행의 증거에서 벗어나는데에도 긴, 큰, 아득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연말입니다. 최근에는 아끼는 지인과 롯데월드를 다녀왔어요. 마지막 미디어아트를 보기 위해 차디찬 날씨에 바깥에 있었습니다. 얼어오는 볼, 에어오는 발 끝이 문득 연말이라는 마음을 들게 했습니다. 뭔가가 지나가고 있구나, 내가 뭔가를 보내고 있구나, 다음 해는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확신-

 

빨갛게 식어가는 손끝과 볼, 발끝과 새어들어오는 찬바람이 반가웠습니다. 겨울은 겨울이고 시간은 지났으며 한 해는 지나가고 내년엔 더 행복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난생 처음 해봤어요. 뭘 해도 올해보다는 잘 할 수 있다, 뭘 해도 올해보다는 행복할거다, 뭐 그런 생각이요. 살짝 울 뻔 했습니다. 찬 공기에 덧대어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었어요. 그냥 다 지나간다고. 올해는, 불가항력이 아니라 내가 직접 스스로를 보내고 있다고.

 

 

한 해가 가고 있네요.

올해의 나를 잘 보내주고 싶어요. 

다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년엔 더 행복하고 싶어요. 더 잘 하고 싶고요.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늘 그래왔습니다.

모든 분들의 연말이 벅차게 찬란하고 빠듯하게 사랑스럽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