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사가 여기라 다행이래요
작은 회사에서 애매한 중간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사실 제일 두려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다. 우리가 얼마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누군가는 지치지 않았는지, 서로가 서로를 지치게 하지 않았는지- 여러가지를 고민해야하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일할 때는 여러모로 머리 아픈 것들이 많다.
이런 경우 제일 부담스러운 게 업무의 피드백이다. 특히 나와 다른 직무의 일을 할 때. 여기서는 혼자 열심히 달려주는 디자이너가 그런 예다. 나는 디자인은 모르지만 그녀가 하는 디자인에 책임은 져야한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쓴 말들을 해야하고, 현실적으로 이런 건 도움이 안된다라거나 이런 방향으로 하면 능률이 너무 떨어진다, 그 후에 스케쥴을 고려해야 한다 등 가르쳐줘야하는 것들. 그래도 우리의 디자이너는 어쩌면 나보다 멘탈이 좋아서, 가뿐하게 흡수하고 늘 더 좋은 결과물을 내곤 한다. 첫 회사에서 이렇게 해서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뭐 여러 기분이 드는데-
심지어 근래에는 바쁜 일이 많았어서 갑작스러운 야근도 했어야했고, 디자이너한테 병목현상이 생겨서 리소스 관리가 안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작업물 퀄리티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일들이 생겨서 씁쓸한 시간들이 많았다. 나날이 걱정이 심해지고 있던 시점이였다고 할까.
브랜드북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와중에, 브랜드의 코어는 내부에서 나오니까 구성원 인터뷰를 했다. 거창하진 않아도 브랜드의 가치나 공감하는 비전, 가장 좋은 것들,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등을 텍스트로 물어봤다. (도저히 대면해서 들을 환경은 아니다) 디자이너는 몰린 일때문에 가장 늦게 답을 줬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에 사람을 꼽았다. 새삼 생각해도 첫 회사가 이곳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묘하게 울컥하는 지점이였다. 내가 걱정했던 것들, 미안했던 것들을 다 뛰어넘어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 곳에 대한, 우리에 대한 애착이 나에게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일해야겠다. 우리는 서로가 힘이 되어야했고, 쓴 말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붙잡고 가야한다. 첫 회사가 이 곳이라 처음이라는 말을, 이 애매한 리더입장에서 듣자니- 나도 당신이 이곳에서 일해줘서 다행이라는 답을 주고 싶었다.
무던한 척, 확인했습니다- 답변을 보내고도 한참을 곱씹어보게 되는 답. 오늘은 할만한 날이다. 당신이 이곳에서 안도한다는데, 내가 더할나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