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인생이랑 다를 게 뭐고, 브랜딩이 연애랑 다를 게 뭐예요
근래 들어 다시 책을 잡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독립서점 어딘가에서 산 날마다, 브랜드를 읽었다.
광고를 하든 마케팅을 하든 주변 소문에 조금 더 예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들어봤을 회사인 플러스엑스의 기획자인 임태수님이 쓰신 이 책은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관점을 애정을 담아 작성한 내용이였다. (개인적으로) 일부는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있었지만,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의 관점과 브랜딩의 중요성이 명확하게 표현되어있어서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들도 많은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내용이 어떻든,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좋은 브랜드의 조건이 변하지 않고 정해져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고민 끝에 정의를 내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민이 얕으면 얕을 수록 상황에 따라 바뀌는 답을 생각하게 되고 반쯤은 합리화하면서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쓰는 단어들도, 내용들도 어색한 내용들이 아니라서 그런가 꽤 쉽게 읽었는데 읽다보니 브랜드는 사람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시간으로 증명해야 하고, 하지만 원하는 대로 잘 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유기적으로 태동하는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초기 브랜딩을 하고 있는 브랜드에 있으면서 나는 어쩌면 어떤 인생의 시작점을 빚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브랜드의 근간이 내부 구성원이라는 점도 그렇다. 무조건 외부에 보여주기 식으로 맞춰가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파장이 브랜드를 빚어나간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또 브랜딩은 연애와 다를 게 없겠구나, 싶었다. 책에서도 그렇고, 광고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했던 브랜드도 그렇고. 브랜드는 묵묵하게 누군가의 삶의 맥락에 흡수되어야한다. 그것이 무조건 조용해야한다거나, 화려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삶의 '맥락', '흐름'에 흡수되려면 아주 세심한 것부터 맞춰나가야한다. 어느 한 시점에서 툭, 튀어버리는 순간 그 브랜드는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럼 모든 사람에게 하나하나 맞추는 게 가장 좋을까? 사실 그건 어렵다. 그러니 늘 다정하게, 스스로의 줏대를 지키면서, 그게 고집과 억지로 치환되지 않으면서, 상대를 애정하는 것. 그리고 결국 시간으로 증명하는 것. 이게 연애랑 다를 게 뭐람. (그런 연애를 해본 건 아니지만)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브랜딩과 마케팅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근래에는 다양한 개인정보 이슈로 인해 브랜딩과 마케팅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같은 목소리로같은 이야기를 해야만한다. 근래에는 점점 비슷한 제품도, 비슷한 마케팅 메시지도 많아진다. 브랜딩이 중요한건 브랜드가 가고자 하는 길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기 떄문이고, 이게 바로 그 브랜드와 마케팅의 강력한 차이점이 되는것이다. 마케팅이 너무 프로모션 관점에서 언급되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사실 질투에 가깝다. 내가 끄덕끄덕, 격하게 동의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예를 들어, 브랜드는 단순히 제품을 싸게 팔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거나, 가격 프로모션으로 뭘 하는 게 아니라거나, 시간이 증명하는 것이라거나, 줏대있게 스스로의 길을 가야한다거나 뭐 그런거..) 또 한편으로는 그게 말은 쉽지, 하는 삐뚤어진 생각이였다. 매스미디어가 브랜딩의 중심은 아니라지만 그런 거 하나 할 수 있음 좋겠다, 싶고. 이번 프로모션으로 뭐라도 할 수 있는 매출이 났으면 좋겠다, 싶은 내 자아. 윗선에서 소재가 더 자극적이어야 하지 않나? 라는 말을 방어하면서도 완전히 스스로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나. 나도 그런 브랜드가 좋은 거 아는데. 프라이탁이고 애플이고 나이키고 왜 완벽한 브랜딩인지도 아는데. 그럴 수 없는 소규모 브랜드의 마케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걸 읽으려니 왜 이렇게 질투가 나던지. 삐뚤어진 목소리로 예, 속 좋은 소리네요.. 라고 한 내가 좀 싫어졌다. 앞서 동의가 안된다고 했던 부분은 이런 부분.
사실 저자의 취향과 내 취향이 동일해서 더 그랬다. 읽는 내내 모르는 브랜드가 없고, 좋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이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서 읽으면서 대화를 하는 기분이였다. 그냥 우리 브랜드가 그럴 수 있을까.. 싶고, 당장 프로모션을 앞두고 며칠 야근했던 내가 좀 슬퍼지고.. 뭐 그런거지. 그래도 이런 자아를 잃지 않고 나아가다보면 꼭 어떤 중심을 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이 아니라 삶을 빚는다고 생각하면 즐겁잖아. 우리 브랜드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새삼 일에 대한 의욕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