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감동을 넘어 충격을 주는 법

오르 Orr 2023. 11. 7. 23:06




요즘엔 퀄리티가 높은 다양한 작업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 독립출판페어를 갔을 때 더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그런 걸 느꼈다기보단 상처를 받았다에 가까운 것 같다. 언젠간 빠른 시일 내에 독립출판을 꼭 해봐야지, 라거나 내 이야기를 가득 담은 기록물을 내야지, 라고만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던 영역이였는데 막상 현실은 달랐다. 너무 내 이야기를 쓰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주변에 멋진 작업물들은 너무 많고, 사진이나 에세이류는 인스타그램에서만 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중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어떤 간극을 고민해야할까?

굳이 광고로 표현하자면, 수많은 캠페인이 런칭되는 시점에서 와, 이건 정말 장난아니네- 싶을 정도로 충격을 주는 캠페인이 있다. 감동은 받을 수 있지만, 충격을 받는 건 어렵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멋진 걸 보면 감동을 받고, 더 멋진 걸 보면 충격을 받는 게 아니다. 그때의 감정, 특성, 상황, 시점까지 모든 게 들어맞았을 때서야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받는 것이다. 캠페인 대행을 하는 회사에 있었을 때는, (퍼포먼스였으면서도) 아이데이션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넘어 충격을 주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커리어도, 내 특성도 생각해보면 참 머쓱한 욕심이지만.

내가 그런 의미로 충격을 받은 경험 중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건 역시 제주도의 아르떼 뮤지엄이다. 온 몸으로 차오르는 듯한 예술작품. 그 세상 안으로 내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하지만 그것도 처음이지, 제주도의 빛의 벙커와 강릉까지 다녀왔을 때는 나조차도 무뎌졌다. 심지어 요즘은 수많은 미디어전시가 생겨나고 있다. 충격을 받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처럼 빠른 속도로 컨텐츠들의 자극도가 올라가는 세상에서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미디어는 늘 우리에게 강제로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 우리는 그런 충격들에 익숙해지니까.

미디어가 주는 다양한 자극에서 벗어나 정말 감동을 넘어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무언가를 빚어나가야하는 것 같다. 우리가 충격받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시간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시간의 누적은 그 어떤 미디어도 제공할 수 없다. 오래 누적된 시간이 정제되고, 빚어지고, 다뤄져서 누군가에게 도착했을 때 충격 혹은 경이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싶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긴 호흡을 놓차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이 언젠가는 시너지를 내주기를. 이 브랜드가, 얼마나 소중하고 다정하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내가 너무 급하게 접근해서 어떠한 흐름을 망치지 않기를. 빠른 속도로 일하면서도 심호흡을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