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성격은 ”외부의 자극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라는 의미이다

오르 Orr 2023. 11. 1. 20:40


”당신에게 자극은 무엇인가요?“
”긍정적인 자극에는 어떻게, 부정적인 자극에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나날이 느끼는 것에는, 결국 세상에 있는 어떤 “성공”은 허상이고 결국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량적인 수치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내가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와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지가 인생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실패한 인생은 없다는 데에도 크게 공감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컨텐츠와 알고리즘의 편의성에 따라 내 취향을 내가 정의하지 않고 정의당하고 있는 시대이다. 나는 내가 이걸 좋아해! 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게 내가 좋아하는 것일지, 세상이 내가 그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인지, 뭐 그런 것들을 점점 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를 정의하고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에 점점 더 관심을 쏟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성격“이란 외부의 자극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모아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주 조금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긍정적인 자극과 부정적인 자극, 각각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내가 어떤 것을 자극으로 받아들이는지까지를 생각했을 때 내가 조금 더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극은 무엇일까? 주로 무언가를 증명했을 때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여전히 그 증명의 기준을 내 스스로에게 두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숫자로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조금 더 내가 내 스스로에 대한 기준과 목표를 두고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런 자극을 받을 때 나는 자신감을 얻는다. 업무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동기를 얻기도 하고. 다만 내가 앞에 지속을 강조한 것은 긍정적인 자극이 계속 이어지면 안주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조금 더 이 환경에 머무르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자극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다. 나는 문제가 생기면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점점 더 우울해지고 힘들어지기도 하니까. 다만 내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누군가의 결정에 모든 것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상황에서 견뎌야할 때 힘들어진다. 다만, 여기서 기인되는 좋은 점이 있다면 새로운 시도와 충돌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무력한 상황이 싫어서 내가 유력한 상황이 될 수 있게끔 쉼없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팀으로써, 일할 때 긍/부정적인 피드백과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일을 일찍 시작해서인지, 여전히 삶의 대부분을 일이 차지하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다양한 자극의 상황을 일 속에서 치환하게 된다. 말 그대로 나와 상대의 성격을 잘 알고 적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날이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건 그냥 전쟁에만 쓰이는 말이 아니였던 것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으려면 상호 지피지기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다양하고 (감성적이지 않더라도) 다정한 방법들이 필요하다는 생각.

저연차와는 어떻게 일해야할지, 고연차와는 어떻게 일해야할지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내일의 출근을 앞두고, 내 ‘성격’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민하면서.